키메라가 사라진 후. 평화의 시대라고 불렸지만, 키메라에게 능력이 쓰여야 할 터인 워커들은 어디에 사용될까? 키메라의 심연에 정신을 맞대어야 했던 둘은 이제 인간의 머릿속에 고개를 처박는다. 교육을 받을 때는 분명 금기시되었던 것들을, 칼을 박을 괴물이 사라지자 은근슬쩍 강요당했다. 워커들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집단이었기에, 여전히 그럴듯한 명분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호넷은 수긍했고, 신소는― 그 모든 것에 그다지 놀라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키메라와의 실전에서 장해 없는 신체와 단순명쾌한 방식 덕에 호넷의 쓰임이 유용했던 것과 반대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정교한 정신 조작에선 신소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마련이었다. 인류의 다수가 멸절한 지금, 키메라마저 사라지자 ‘지휘관’이 필요한 대규모의 전쟁은 더 이상 없기에. 호넷 콕스는 전쟁을 즐기는 성향은 죽어도 아니었으나, 편중된 사용처는 태어나기를 계획으로 빚어진 존재에게 아무래도 안개 같은 불안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전쟁의 시대, 신소에게 호넷은 심연에 동화되지 않도록 해주는 중요한 세상과의 끈이었고, 호넷에게 신소는 당연히 함께 하는 필요조건이자 친구였다. 평화가 찾아오고 인간의 시대가 와, 둘의 아슬한 균형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였지만, 도구가 아닌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내리기엔 둘은 또 마찬가지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워커들은 병기로 만들어져, 인간의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지혜는 대체로 부족했다.
그러니 결국 둘 중 누구도 어른이 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셈이다. 어쩌면, 긴 시간이 흘렀다면, 어쩌면….
물론 모래알 같은 불행은 해일과도 같은 더 큰 불행으로 쓸려나갔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폭로일 테다. 사바세계의 인간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파란 피의 워커들이 내지를 비명이 가장 크다는 것을 듣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들에겐 우리의 비명이란 이미 단란한 음악과 구별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
이 말도 안 되는 폭로가 둘의 손아귀에서 앗아간 것은 이러하다: 생존을 보장해주는 안전망과 소속, 물리적인 의식주, 자의든 타의든 유년 시절부터 뿌리를 박고 자라온 세계, 황량한 세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문명의 울타리 안쪽, 피와 존재를 대가로 얻어낸 명예, 그리고 애써 부정해오던 ■■■ ■■과 질척하게 맞닿은 알량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호넷 콕스의 유전자와 이름자를 제공해준, 무너져 가는 세상에서 가장 큰 기업체의 주인은 과연 이 모든 것을 선사해줄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호넷은 이 제안을 완전히 긍정적으로 느끼지만은 못할지언정 안도하는 데가 있었으니,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제안이란 폭로로 파헤쳐지기 전부터 이미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었던 ‘있을 자리’에 대한 안개마저 걷어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신소는 무엇보다 자신을 키메라로 대우하지 않는 문명의 틀이 생각보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가족이라고, 불렀어.”
“…인간이라고, 불렀어.”
그렇게 둘은, 목줄을 든 손이 바뀌는 것을 순순히 수긍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