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결국 인간의 편에 서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게, 그의 파트너가 인간의 마음을 차곡차곡 깨달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글쎄, 적어도 키메라에게 사춘기는 없지 않겠는가) 폭력성도 잔혹함도 남아있으니, 증명이나 굴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동행이라 설명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 자신의 가치가 반격의 발판으로 쓰일지 말진 여전히 무관심하다.
프시케의 상자
사람을 비로소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천사 미하일의 세 가지 대답을 읽어도 답을 찾을 순 없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다. 사람에겐 미래를 내다볼 지혜가 없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산다.
요즘에는 무신론자가 너무 많다. 알음알음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랑보다 돈이나 명예, 다른 것들로 사는 듯 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스스로 사람임을 확신한다. 프시케가 보기에도 그들은 사람 같았다.
하필 프시케는 어중간했다. 무신론자였으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고, 많은 걸 좋아했지만,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책에서 말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도, 숭고하지도 않았다. 파트너인 판도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첫사랑이라고 부르기도 어설픈 풋사랑이기 때문이란 걸 깨닫긴 요원해 보였다.
돌아간 건 확신이 생겨서가 아니다. 과거의 배신을 아직 잊지 않았다. 그러나 프시케는 돌아갔다. 미하일이 용서받은 그 날, 구둣가게에 작별을 고한 것처럼. 차라리 관성에 가까웠다. 운명이라고 부르는 게 옳았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화살촉에 손가락을 찔린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 의심은 사랑과 함께할 수 없다며 떠난 주제에 여전히 죽게 둘 수는 없다니. 프시케는 자신이 프시케인지, 에로스인지 가끔 헷갈린다.
판도라와 함께 W.O.W에 돌아갔다.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곤 누구도 치료할 수 없었으므로 이제 프시케가 구할 수 있는 건 판도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 무능한 건 아니었는데, 판도라가 워낙 강력한 전력인 데다가,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은 한 끗 차이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해본 바 있기도 했다.
프시케의 상자에는 희망 대신 영원한 잠이 들어있었다. 사랑하는 것들에게 사랑받고자 치장하려 연 상자였다. 동족이 아닌 것을 사랑한 대가였다. 그래도 괜찮다. 희망이라면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