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네임 만토
의식이 존재하는 생명의 의지를 받아들이고 조종할 수 있다. 단순하게는 앞으로 가라는 것에서부터, 극단적으로는 스스로 다치게 하라는 것까지. 자신이 의지를 둔 일을 실행시키기 때문에, 처음에는 예지의 능력으로 오해받기도 했다고. 다만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감정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고, 대상의 저항 의지가 강한 경우 능력 사용의 난도가 올라가기도 한다. ‘스스로 다치게 하라’는 것과 같이 본능적 저항에 부딪힐 법한 명령을 시행할 경우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등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해지기도 한다고. 능력 사용이 한계에 달하면 주변의 의식들이 무작위로 뒤섞여 들려오며 강한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해 일시적으로 제대로 된 의식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다행이라면 파트너인 나챠의 의식에는 접근이 불가능해, 그 곁에서는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아진다.
주로 사용하는 능력의 이름은 데키마. 다른 생명체의 의지를 조종하는 능력이다. 상대의 움직임이나 자아가 통제될수록 능력 발휘가 쉬워지기에, 자아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키메라 대응에는 꽤나 효율적이라고 한다.
코드네임 아틀락
우주에 존재하는 암흑 물질을 소환하여 해당 물질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자아가 존재할 리 없는 매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소환된 매개체는 나챠의 말이 아니면 반응도, 따르지도 않는다. 평상시 나챠의 뒤를 상시 따라다니는 검은 구체-일반적인 성인의 주먹만 한 크기-가 그것이다.
암흑 물질은 단순한 거미줄이나 실이 연상되는 가느다란 모양으로 시작하여 키메라같이 생전 처음 보는-누군가에게는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인간들에게 익숙한 동물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실의 형태를 구성하는 일이 많아 능력 이름은 편의상 노나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역시, 실보단 거미줄 같지 않나? 키메라를 와앙~ 하기 위해 구속하는 과정이 말이지~ 거미도 식사 준비를 위해 먹잇감을 둘둘 만다네?
당연하게도 커다란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커다란 암흑 물질을 소환해야 한다. 능력 사용에 한계가 오면 나챠의 눈동자 색에서부터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붉은빛을 띠는 동공이 푸른빛으로 물들고, 이후 눈동자가 백색으로 변함과 동시에 시야가 일시적으로 암전된다. 말이 암전이지 본인의 말에 의하면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 혼자 동동 떠다니는 기분이라고.
두 사람을 함께 부르는 명칭은 모르타. 실을 잣고, 감으며, 마지막으로 끊어내는 과정이 먼 옛날 전해져 내려오던 신화 속 신을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명칭이다.
훈련과 연습, 그 어떤 것과도 달랐음에도 일라이에게 전투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시종일관, 지루하고 귀찮은 일일 뿐이다. 아무리 거대하고 흉악하건 제때 본능을 거스르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위협은 제로에 가까웠으니까. 그나마 나챠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덜 지루하다. (대체로 예상을 벗어나는 타입이라 그런 듯) 지루한 전투에 불려 나가지 않을 땐 어딘가 같이 앉아 사람들을 지켜보며 평가질이나 한다.
다른 워커들이 꺼리는 전투가 있으면 거의 가장 먼저 자원한다. 워커홀릭 성향이 있는 나챠 탓이다. 가끔 투덜대고 원망 조로 말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 같이 나가긴 한다. ―흐흥, 그래도 나와 나가는 것이라 즐겁지 않나?
전투조차 시종일관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끼고 있는 자신의 파트너와 달리 나챠는 임무를 위해 현장으로 나가는 순간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워커들이 꺼리는 전투에도 덥석덥석 나가고는 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무엇이라도 일하고 싶어 하는 워커홀릭의 성향으로 위험부담이 있는 임무에 나가는 것이냐 묻느냐면, 딱히 그런 이유로만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번에는 어떤 종류의 키메라를 마주할 것인가 하는…… 기대감도 섞여 있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