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 오래된, 여전한 사이.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달라진 것은 주변의 시선뿐
차세주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초능력 덕에 언제나 전장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워커.
잦은 부상을 겪다 결국 오른쪽 눈에 중상을 입고 최종적으로는 시력을 잃었다. 멀어버린 눈동자는 초점이 사라진 탁백색이 되었다. 검은 안대 착용 중. 같은 날의 전투로 인해 얼굴에 오른 눈 위를 세로로, 입술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긴 흉터가 남았다.
시기상 키메라의 멸종이 선포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던 때였기에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다. 고통은 참을 만했지만 이제 와 조금 불편하긴 하다. 워커이기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력 손실 이후 조준이 다소 부정확해졌다. 범위와 물리력으로 커버하고 있으나 정밀함을 요하는 공격이 어려워져 많은 연습이 필요한 단계. 자신의 능력에 보다 능숙해진 송인아를 보조하는 용도의 응용 어빌리티는 지면 조작. 일방적 서포트를 받던 이전과 달리 서로를 서포트할 수 있게 되었다.
발견된 패널티는 자각몽.
실전 전투에 돌입하며 과도한 사용이 연이어지던 날,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꿈속에 들어와 있음을 알았다. 깨어날 방법을 찾아 한참을 헤맸지만,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꿈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회복 후 이것이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패널티임을 알게 되었다.
최장으로 잠들어있었던 기간은 일주일 정도. 잠든 동안 달이 떠 있는 붉은 바다에 자신만이 서서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는 꿈을 꾼다. 깨어날 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다. 패널티를 피하고자 발현의 범위를 100㎥로 스스로 제한했다.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인류의 틈에 숨어든 키메라. 자신도 몰랐던 탄생의 비화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훈련은 곧 실전, 실전도 곧 훈련. 언제나 채찍질을 당하듯 재능의 성장을 강요당해왔으나 이만한 트리거는 없었다.
인간으로 살아왔다. 자신이 인간 이외에 다른 존재일 리 없다. 그리 믿고 사고하며 행동해온 그간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입장에 처한 지금, 그는 자신의 파트너에게 도망치자고 말한다. 어디로? 어디로든.
송인아
차세주의 뒤에서 그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맡았던 워커.
송인아의 앞에는 언제나 차세주가 등을 진 채로 버티고 있었다. 그 덕에 숱한 전투들을 겪은 이후에도 몰골은 비교적 양호한 축에 속했다. 차세주와는 완연히 대비되게.
그가 눈을 다쳤을 당시에조차. 차세주를 보조하는 역할은 자신의 것이고, 당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눈가 정도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력을 잃는 일까지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로 차세주의 부상은 자신의 탓이다. 후회와 자책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이에 따른 반사작용으로 차세주의 오른쪽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
차세주의 활용 범위가 다소 줄어든 것과는 반대로, 송인아는 능력을 다루는 것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마치 호흡을 하는 것과 같이. 이전엔 차세주가 ‘+’, 송인아가 ‘-’였다면 이제는 송인아가 ‘+’, 차세주가 ‘-’. 결국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달라진 것은 없다.
패널티는 환각과 환청.
녹아내리는 피부, 비명과 비난, 그리고 붉고 푸른 피. 신체적 컨디션보다 심리 상태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모양인지 근래에 들어 패널티를 겪는 빈도가 확연히 증가했다. 차세주에겐 이러한 제 상태를 숨기려고 해보았으나…….
과거의 송인아가 지켜야 하는 것이 ‘인류’였다면 지금의 송인아가 지켜야 할 것은 ‘차세주’다. 닻을 잃은 배가, 지구를 잃은 달이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워커는 무엇으로 만들어지지? 푸른 피와 큰물에서 나온 열 개의 뿔. 그리고 키메라의 모든 것? 그런 건 하등 중요치 않다. 너는 너고, 나는 나지. 그거면 충분하잖아. 그의 파트너는 말했다. 도망치자고. 어디로? 어디로든. 네가 가고자 하는 곳이라면 기꺼이.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진다.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