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프시케의 촛대
가장 인간을 닮은 워커란 결국 인간이 아니다. 오직 인간이 아닌 것들만 인간을 닮을 수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프시케는 아직도 가장 인간을 닮은 워커다. 푸른 피의 진실을 엿본 후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는 모습은 흡사 사춘기 소녀 같다. 언젠가 워커의 사명이 끝나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 인간이란 타종에 배신감을 느껴야 하는지, 인간이 될 수 없단 사실에 절망해야 하는지, 인간 따위에게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존재로서 오롯하게 서야 할지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답을 찾을 때까진, 아니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죽을 순 없다. 생존 본능으로 가뿐하게 W.O.W를 탈출했다. 도주는 쉬웠지만 조심스럽진 않았다. 모든 걸 부수는 파트너를 뒀으니 당연지사였다.
이제 프시케는 판도라를 말리지도, 다친 사람을 치료하지도 않는다. 굳은 촛농과 불이 꺼진 촛대는 뼈대처럼 앙상하다.
판도라의 상자
인간의 마음과 유전이 얹어진다 한들 잔혹함과 폭력성을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 피의 색이 달라진대도 흐릴 수 없는 판도라의 본성이다. 수많은 경멸과 혐오, 경악이 서린 눈빛이 워커를 향한대도 기죽거나 죄책감 가지는 일 없이 아주 잘 지냈다. 어차피 휘두르면 부서지고 짓뭉개지는 것들에겐 크게 관심이 없으므로……. 무슨 일이 있건 프시케는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을 안다.
bottom of page